난 종교에 대해 잘 흔들리지 않는 꽤나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과 논쟁해봤자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종교이야기를 하는걸 꺼리는 편이지만,
어렸을때부터 깨달음, 사후세계등에 대해 관심도 많았고
여러가지 책, 글, 논쟁과 이야기등을 통해 체계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잡다하게 아는 지식은 여러방면으로 쌓았다.
주변사람들을 통해 이 종교 저 종교 경험해보기도 했고.
성격이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은 성격이라 - 이 인생의 고통의 사슬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수 있는지에 대한, 내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며, 내 존재의 이유가 뭐며... 이런 생각을 항상 가지고 살아왔다.
난 항상 누군가 나에게 저 모든 질문에 명쾌하게 답해주기를 기다리며
내 주변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주로 기독교인)들에게 질문도 하고 논쟁도 걸고 말싸움을 하기도 했었다.
정말 어렸을때는 친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성당에 가곤 했었다.
그곳에서 기억나는 한가지는, 할아버지는 성당에서 무슨 일인가를 하셨었는데,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성경에 관한 만화책을 열심히 보고 있으니,
신부님인지 수녀님인지 오셔서 "착하다"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가신것이다.
그게 기분이 좋아서 더 열심히 읽었었던것 같다.
다른 한가지는, 할머니와 성당에 가는 길에 거지를 만났는데,
그 당시 용돈으로 할머니에게 1000원을 받은게 있었는데
그 거지가 불쌍해서 돈을 주고는 싶었지만 나도 그 돈으로 사먹고 싶은게 있었기때문에
1000원을 주고 거지의 돈통에서 500원을 거슬러간 일이다.
그걸 보고 할머니도 웃으시고 그 거지도 웃었던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왜 웃는지 이해할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긴일이다.
순수한 어린애라서 가능했던것 같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기때문에, 외할머니가 나와 내 동생을 자주 돌봐주시곤 하셨는데, 외할머니가 불교를 믿으셨기 때문에 초등학생때는 절도 자주 갔었다.
할머니를 따라서 도봉산에 있는 도봉사에 가면서 올라가는 길에 고소한 번데기를 사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불교 캠프같은걸 가서 법명도 받고 했지만 기억나지는 않는다.
초등학생때라 그저 간식거리에만 관심이 있었던것 같다.
스님이 해주셨던 설법말씀중 기억나는게 정말 하나도 없다. ㅎㅎ
불교의 가르침은 오히려 법당에서보다도 부처님 말씀이 담겨져있는 일화와 이야기등을 통해 더 많이 얻었던것 같다.
결구 그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사상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모든 고통은 욕망(이른바 108번뇌)에서 시작되니 욕망을 버릴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수 있다. 정도일려나?
중학교 이후에는 기독교를 믿는 친구들을 통해서 기독교를 몇번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 전에도 초등학교때 길거리나 놀이터에서 전도할려고 노력하시는 전도사분들때문에 기독교에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었다. 그분들과의 기억은 대부분 안좋은 기억들이었지만.. 어쨌든.. 난 그렇게 갈때마다 교회에 있는 분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인생에 대한 고민들과 고찰들에 대한 질문을 했었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답변해 준 분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내 관심사는 현세이고
그분들이 이야기하는건 후세의 이야기이기때문에
답변해줄수가 없었던것 같다.
이번에는 다르겠지... 라는 생각에 갔다가
결국 난 실망만 안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고는 한동안 종교와 등지고 살았다.
그러다 미국에 온후, 기독교와 접할 일이 더 늘어났다.
여전히 아무런 "아하!" 하는 깨달음도 얻지 못하고 돌아고는 했었지만
그냥 외로워서, 사람을 사귈려고, 영어실력 늘려보려고, 등등의 이유로 교회를 가고는 했다.
사실 위의 글은 지금부터 쓸 글을 위한 서론이었다.
최근에 나로써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나에게 충격을 준 그 분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항상 무슨 이야기를 할때마다 주님 하나님을 입에 올리는 분이셨다
난 그분의 머리속이 들어다보고 싶어졌다.
난 그분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난 그분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물어보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그동안 남들이 성경 읽어보라는 이야기 할때마다
귀찮기도 하고 바쁘기도 해서
단 한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던 내가
내 돈을 주고 직접 Study bible을 사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목사님을 통해 성경을 배울수도 있었겠지만
목사님들마다 설교 방법이 다르고, 사상도 조금씩 다르고, 누가 해석 하냐에 따라 같은 구절의 의미도 달라질수 있다는건 이미 경험해봐서, 직접 공부를 하는 쪽으로 택했다.
또 난, 성경의 모든것에 대해 최대한 빨리 알고 싶었다.
일주일에 고작 문장 3~4개정도의 해설을 듣는건 너무 느렸다.
책을 보다가 궁금한게 있으면 예수님과, 성경에 대한 글들을 인터넷으로도 찾아봤고
오늘 다큐멘터리도 2편정도 봤다.
그러다가 "도마 복음"이라는 외경 복음서에 대해 알게됬다.
일반 복음서와는 달리 "영지주의적"관점의 글이 많단다.
그래서 "영지주의"가 뭔가 찾아봤다.
영지주의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던중 이런 문구를 보게되었다.
"정통파 기독교와 영지주의의 본질적인 차이는 정통파 기독교에서는 구원이 "믿음(신앙 · faith)"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반면 영지주의에서는 구원이 "앎(gnosis 그노시스)"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것에 있다."
...... 아!!!... 난 이 글을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내가 그동안 왜 기독교 신앙에 대해 실망만 하고 이해를 할수없었는지 깨달았다.
난 그동안 기독교를 "영지주의의 방식" 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닳고 실천하면 인간세상의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서 구원을 받을수 있을거라고.. 난 그게 기독교의 구원받는 길인줄 알고있었던 것이다.
근데 그게 아니라 작금의 기독교 핵심 논리는 구원은 앎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된다는 것이었던 것이다.
믿음을 가르치는 교회에서 앎(깨달음)을 얻고자 했으니 그동안 내가 얻지못했던게 당연했던것이었다.
기독교에 대한, 그분에 대한 이해해 한발 다가간 느낌이다.
내가 정말 진정으로 이해할수 있을지..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은 모르겠다.
나에게는 성경공부에만 집중할수 있는 시간이 한달정도 남아있다.
내가 어디까지 갈수있을려나.
사람들과 논쟁해봤자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종교이야기를 하는걸 꺼리는 편이지만,
어렸을때부터 깨달음, 사후세계등에 대해 관심도 많았고
여러가지 책, 글, 논쟁과 이야기등을 통해 체계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잡다하게 아는 지식은 여러방면으로 쌓았다.
주변사람들을 통해 이 종교 저 종교 경험해보기도 했고.
성격이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은 성격이라 - 이 인생의 고통의 사슬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수 있는지에 대한, 내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며, 내 존재의 이유가 뭐며... 이런 생각을 항상 가지고 살아왔다.
난 항상 누군가 나에게 저 모든 질문에 명쾌하게 답해주기를 기다리며
내 주변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주로 기독교인)들에게 질문도 하고 논쟁도 걸고 말싸움을 하기도 했었다.
정말 어렸을때는 친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성당에 가곤 했었다.
그곳에서 기억나는 한가지는, 할아버지는 성당에서 무슨 일인가를 하셨었는데,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성경에 관한 만화책을 열심히 보고 있으니,
신부님인지 수녀님인지 오셔서 "착하다"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가신것이다.
그게 기분이 좋아서 더 열심히 읽었었던것 같다.
다른 한가지는, 할머니와 성당에 가는 길에 거지를 만났는데,
그 당시 용돈으로 할머니에게 1000원을 받은게 있었는데
그 거지가 불쌍해서 돈을 주고는 싶었지만 나도 그 돈으로 사먹고 싶은게 있었기때문에
1000원을 주고 거지의 돈통에서 500원을 거슬러간 일이다.
그걸 보고 할머니도 웃으시고 그 거지도 웃었던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왜 웃는지 이해할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긴일이다.
순수한 어린애라서 가능했던것 같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기때문에, 외할머니가 나와 내 동생을 자주 돌봐주시곤 하셨는데, 외할머니가 불교를 믿으셨기 때문에 초등학생때는 절도 자주 갔었다.
할머니를 따라서 도봉산에 있는 도봉사에 가면서 올라가는 길에 고소한 번데기를 사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불교 캠프같은걸 가서 법명도 받고 했지만 기억나지는 않는다.
초등학생때라 그저 간식거리에만 관심이 있었던것 같다.
스님이 해주셨던 설법말씀중 기억나는게 정말 하나도 없다. ㅎㅎ
불교의 가르침은 오히려 법당에서보다도 부처님 말씀이 담겨져있는 일화와 이야기등을 통해 더 많이 얻었던것 같다.
결구 그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사상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모든 고통은 욕망(이른바 108번뇌)에서 시작되니 욕망을 버릴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수 있다. 정도일려나?
중학교 이후에는 기독교를 믿는 친구들을 통해서 기독교를 몇번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 전에도 초등학교때 길거리나 놀이터에서 전도할려고 노력하시는 전도사분들때문에 기독교에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었다. 그분들과의 기억은 대부분 안좋은 기억들이었지만.. 어쨌든.. 난 그렇게 갈때마다 교회에 있는 분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인생에 대한 고민들과 고찰들에 대한 질문을 했었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답변해 준 분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내 관심사는 현세이고
그분들이 이야기하는건 후세의 이야기이기때문에
답변해줄수가 없었던것 같다.
이번에는 다르겠지... 라는 생각에 갔다가
결국 난 실망만 안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고는 한동안 종교와 등지고 살았다.
그러다 미국에 온후, 기독교와 접할 일이 더 늘어났다.
여전히 아무런 "아하!" 하는 깨달음도 얻지 못하고 돌아고는 했었지만
그냥 외로워서, 사람을 사귈려고, 영어실력 늘려보려고, 등등의 이유로 교회를 가고는 했다.
사실 위의 글은 지금부터 쓸 글을 위한 서론이었다.
최근에 나로써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나에게 충격을 준 그 분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항상 무슨 이야기를 할때마다 주님 하나님을 입에 올리는 분이셨다
난 그분의 머리속이 들어다보고 싶어졌다.
난 그분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난 그분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물어보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그동안 남들이 성경 읽어보라는 이야기 할때마다
귀찮기도 하고 바쁘기도 해서
단 한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던 내가
내 돈을 주고 직접 Study bible을 사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목사님을 통해 성경을 배울수도 있었겠지만
목사님들마다 설교 방법이 다르고, 사상도 조금씩 다르고, 누가 해석 하냐에 따라 같은 구절의 의미도 달라질수 있다는건 이미 경험해봐서, 직접 공부를 하는 쪽으로 택했다.
또 난, 성경의 모든것에 대해 최대한 빨리 알고 싶었다.
일주일에 고작 문장 3~4개정도의 해설을 듣는건 너무 느렸다.
책을 보다가 궁금한게 있으면 예수님과, 성경에 대한 글들을 인터넷으로도 찾아봤고
오늘 다큐멘터리도 2편정도 봤다.
그러다가 "도마 복음"이라는 외경 복음서에 대해 알게됬다.
일반 복음서와는 달리 "영지주의적"관점의 글이 많단다.
그래서 "영지주의"가 뭔가 찾아봤다.
영지주의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던중 이런 문구를 보게되었다.
"정통파 기독교와 영지주의의 본질적인 차이는 정통파 기독교에서는 구원이 "믿음(신앙 · faith)"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반면 영지주의에서는 구원이 "앎(gnosis 그노시스)"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것에 있다."
...... 아!!!... 난 이 글을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내가 그동안 왜 기독교 신앙에 대해 실망만 하고 이해를 할수없었는지 깨달았다.
난 그동안 기독교를 "영지주의의 방식" 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닳고 실천하면 인간세상의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서 구원을 받을수 있을거라고.. 난 그게 기독교의 구원받는 길인줄 알고있었던 것이다.
근데 그게 아니라 작금의 기독교 핵심 논리는 구원은 앎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된다는 것이었던 것이다.
믿음을 가르치는 교회에서 앎(깨달음)을 얻고자 했으니 그동안 내가 얻지못했던게 당연했던것이었다.
기독교에 대한, 그분에 대한 이해해 한발 다가간 느낌이다.
내가 정말 진정으로 이해할수 있을지..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은 모르겠다.
나에게는 성경공부에만 집중할수 있는 시간이 한달정도 남아있다.
내가 어디까지 갈수있을려나.